최흥철 (월간미술 2008. 12)
기본 조형 요소들 중 선은 건축 도면에서처럼 평면에서 공간의 상대적인 크기를 기재하기 위해 2개 축을 교차시키거나 또 3개 이상의 선을 교차시켜서 재현의 일루전을 보여줄 수 있다. 투시 드로잉을 할 때에 건축가들이 자 또는 다른 광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소실점을 정하고 공간의 일관성을 합리적으로 부여하고자 함에 비해 이정민의 경우는 화가들의 붓과 연필처럼, 영 안 어울리게도 직관적 묘사를 위해 마우스를 사용한다.
그녀는 건축물의 실내 또는 외관, 도시 환경에 둘러싸인 곳, 겹치는 구조물 등이 있는 경관 같은 인공적인 환경을 소재로 선호한다. 작가는 건축적 요소인 선과 면, 모서리 벽, 기둥, 문 등을 단지 선과 색면, 그리고 이차원 이미지 등을 평면에 조립하여 3차원 공간의 투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생하는 화가가 그러하듯이 전경에서 선택한 장면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부수적인 요소들을 탈색시키거나 제거해 나가며 집 짓는 순서의 역방향으로 모든 형태를 기초 요소로 환원시키고 있다. 복잡함이 제거된 후 맨 처음으로 돌아간 백색 빈 공간에서 모든 것이 다시 건설된다.
선택적 지각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천천히 서로 다른 속도로 등장하는 선들은 공간과 시간과 이미지의 관계를 통해 각자에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매우 주관적임을 일꺠운다. 손수 그린 선묘 그림은 레고 블록 쌓듯이 비어 있는 여백에 이미지를 지어 올리며 사물과 풍경이 서서히 인지되는 순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실시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실제와의 거리를 확 당겨놓는다.
그녀의 부조작품에서도 같은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데 사물을 보는 시점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주관적인 시간 체험에 따라 간격이 다르게 메워지는 식이다. 시간의 단위를 계량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물에 대한 직관적이고 개념적인 사고와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직장인들의 ‘myst have’ 인 ‘MS Powerpoint’를 창작도구로 삼은 이정민의 엉뚱함은 화이트 칼라의 노동이 승화된 예술적인 사무행위로 볼 수 있다.
확연히 떨어지는 그래픽 알고리즘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공간의 도큐멘테이션에나 적합한 툴을 고집하는 이정민의 작업은 누구나 편하게 써먹는 휴대폰 카메라처럼 일상에는 가깝지만 기존의 예술행위에 비교하면 확실히 변종이며 종이 없는 프리젠테이션 문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선들이 길이와 굵기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듯한 태도로 오히려 작품 재생과 출력시의 문제에 대해 미묘한 차이를 끄집어내어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