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앨리스온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 새롭고 또한 충격적인 이미지와 화두들. 최근에는 중국의 여과되지 않고 여과할 생각도 없으며 원초적이기에 강하며, 그 땅덩이와 역사, 인구다운 엄청난 스케일의 예술들이 대세다 흐름이다 하면서 우리의 시신경을 때려온다. 현대 미술은 크고, 세고, 강한 것들이 주류였고 주목을 받았으며, 정신없이 터져 나오면서 그 흐름을 이어 왔다. 이에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관적인 어조로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작가들과 작업들이 요즘 따라 부쩍 많이 보이는지도 모른다.
이정민은 ‘젊은’작가이다. 2005년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6년 동대학원에 재학하고 있으며 이제사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그녀는, 2005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있었던 ‘프로젝트 아이’ 전을 시작으로 학교를 벗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요사이 보이는 미디어아트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견 화려하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려는 듯 화려한 그래픽에 저절로 눈이 가게 만들고, 체험해 보고 싶게 만드는 참신하고 깔끔한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또는 놀라운 인터랙션(interaction)을 선보이며 작품 앞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관람객을 흡족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아 온 우리들에게 그녀의 작업은 일견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흰 공간 안에서 선이 몇 개 죽죽 그어지다가 어떤 장소가 되고, 그 장소에 컬러로 사물이 몇 개 얹히면 끝. 무언가 대단한 반전이나 화려함을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디어아트에 대한 선입견은 잠시 내려두고, 찬찬히, 먼저 시작되는 선들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빛나는 하얀색 창을 바라보자면 조금은 다른 모습의 느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주로 머무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그대로의 공간과 시간의 느낌을 전달하기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선이 죽죽 그려지고, 순간 기둥을 비롯한 면들이 쏟아진다. 이마트의 카트가 슬그머니 다가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선이 하나 둘 그려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책장이 완성되고 책이 하나 둘, 우르르 쌓인다. 선이 하나 둘, 판때기가 얹혀 부엌이 되더니 슬금슬금 식빵뭉치 하나가 자기 자리를 찾는다. 등장하는 선들 하나 하나가, 책상의 손잡이가, 침대 위의 이불과 옷가지가 때로는 다급하게, 또는 느릿느릿 꿈뜨게, 혹은 어눌하게 제 각각의 속도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나면 나타나는 완성된 한 공간. 그녀가 우리들에게 선보이는 그녀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공간을 보이기 위해 제각각의 속도로 등장했던 객체들의 흐름은 그녀가 그 공간을 인지했던 경험과 사건들이며 그렇게 느꼈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이다.
작가는 작업을 해오면서 느꼈던 상상력과 창의력의 부재에 고통스러워 하던 중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 해결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선택했고, 그 툴로써 의례껏 생각하기 쉬운 보편적인 프로그램인 플래시(Macromedia Flash) 나 디렉터(Director), 혹은 프로세싱(Processing)dl 아닌 파워포인트(Microsoft Powerpoint)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선택했다. 파워포인트는 사용자가 수치적으로 다양한 변수들을 통제할 수 있는 툴이 아니다. 레이어가 없어서 각 객체들에 움직임을 주려면 하나씩 하나씩 흰 면을 씌워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자취를 없애고, 드러내야 한다. 타임라인이나 프레임 조절 기능이 없어 단지 ‘매우 빠르게, 빠르게, 보통, 느리게, 아주 느리게’ 라는 단 다섯 개의 애매모호한 지칭명령을 가지고 객체의 속도를 조절한다. 그녀는 이러한 제한된 기능을 통해 작업과정의 아날로그성을 획득하고 이용하여 자신이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관람객들에게 전달해 왔다. 디지털 시대에 어리숙함과 미숙한 작업은 분명히 독이지만 그녀의 작업은 오히려 그 어리숙해 보이는 결과물을 통해 친숙함과 정감을, 무심코 넘겨버린 자신의 일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빠르게만 돌아가면서 바짝 죄어진 자신을 잠시 환기시키면서 휴식의 느낌에 이르게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업들은 작가 스스로가 원했던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사회에 투영하고, 사회에서 투영됨이 전혀 배제된, 그런 것과 단절한 공간, 홀로 휴식하기 위한 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방’ 이 그녀의 주된 언어이다. 객관적인 공간이 아닌 그녀가 느낀 그녀의 시간 안에서 그녀가 보고 그녀가 기억한 경험을 그녀의 시계가 흘러가는 화면 안에 풀어 놓는다.
일상적인 주제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친숙해서 공감을 끌어내고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동시에, 쉬이 묻혀 지기 쉬운 양날의 검이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원했던 만큼이나 스스로의 눈과 , 기억과, 마음을 거쳤고 주관적인 시선과 시간을 가지고 관람객들에게 전달된다. 자기만의 시각과 자기만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하고, 또한 이해되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욕망. 일상적이며 개인적인 감정이고, 그것을 조용하고 평범하게 전달하기에 그러한 감성이 만연하고 있는 요즘, 묻혀지기 쉬운 작업이지만 그 주관성을 깊고 강하게 추구하기에 공감하고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방이 남들에게 더더욱 공감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녀의 방이, 그녀의 공간이 외부의 침범 없어 더더욱 파고들어가 지극히 개인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