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일상의 재발견, 2011

아트센터나비 큐레이터 강필웅

 이정민은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매체를 이용해 작업하는 미디어아티스트이다.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업들은 극도로 절제된 태도로 일관하기에 일견 편안하고, 심지어 단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을 살펴보면 그 장막 뒤에 펼쳐진 프로세스는 빈틈없이 가득 채워진 레이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작가만의 숨 막히는 패러독스(paradox)를 경험하게 된다. 그 이미지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절제된 형태의 움직임들은 혼란스러운 도시 생활을 주제로 디지털화 된 수많은 프로몽타주, 회화, 드로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는 이번에 ‘Creative Fountain’을 위해서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것은 엔씨소프트 사옥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주제로 이미지화 시켰으며 이번 역시 그녀만의 독특하고 유쾌한 이미지 해석법이 도입되었다. 기존에 작업과 동일한 방법을 이용해 흰색 바탕에 하나하나 선을 그어 빼곡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이번 작업은 마치 정체된 도시와 시간에 운동을 부여하는 행위와도 같아 보인다. 운동이란 동영상이나 점멸하는 조명에 내재된 시간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련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실제의 사물을 디지털화시켜 공간에 이미지화 하고 그 사물에 운동의 행위를 부여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로 발랄하고 유쾌한, 때로는 심각한 고민이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을 완성해 낸다.

이번에 엔씨소프트 사옥을 주제로 새롭게 진행된 작품 <Office>을 살펴보자, 작가가 활용하는 작품의 매체는 유독 이번 프로젝트와도 잘 어울린다. 그것은 바로 오피스에서 주로 쓰이는 파워포인트라는 점에서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흰색 화면에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선이 그어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지런한 선들은 복잡한 도시의 풍경을 간결하게 정리해내며 결과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있다. 독특한 외벽이 특징인 본 건물의 외관을 분할시키고 다시 재 조합하는 과정이 눈에 띈다. 분리된 조각들은 마치 빌딩을 쌓듯 조합되어 다시 건물을 완성시킨다. 낯익은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옥 내 외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엔씨소프트만의 소품들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로 활용되었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친 오브제들은 디지털 이미지화되어 이제 자신의 역할을 주장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심지어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열망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조합되어 오피스의 클로즈업 된 건축물 속의 풍경은 어쩌면 그냥 쉽게 스쳐 지나가버릴 소소한 우리의 일상을 아카이빙(archiving)해주고 있다.

이번 <Office>는 주제 속에서 작가의 관심이 미치는 주변의 것들에 또 다른 이미지들의 움직임을 더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도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의 풍경보다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서 극대화 된다. 그것은 일상의 풍경을 각각의 대상에 걸맞게 역할을 부여하여 그 모든 사물이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민은 본 전시를 위한 신작 <Office>이외에 일상적인 놀이터 풍경을 그려낸  <Playground>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잠실야구장>을 함께 선 보일 예정이다. 이정민이 보여줄 신선하고 재기가 넘치는 작품을 통해 즐겁고 유쾌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