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나의 작업은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경험한 시간의 흐름과 사물이 특별하게 인식된 순간을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 자주 경험하는 일상은 뚜렷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관적인 감성에 의해 순간적으로 인식된 공간과 사물은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작품은 사소한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벽 4시쯤, 잠은 안 오고 혼자 방안에 있으니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잠을 자려고침대에 누웠는데 싱크대 쪽 창문이 우연히 보였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시간이 멈추면서 창문이 스르륵 열리는 것 같았다. 오로지 사물에만 시간이 흐르고 있는 순간이었다.

작품 속에서 공간은 시선의 흐름에 따라 하얀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려지고, 공간이 완성되면 실사 이미지의 사물들이 각자의 독특한 움직임을 가지고 자리를 잡는다. 실사로 표현된 사물들은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상적인 공간에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사물들이다. 제 각각의 속도로 그려지는 공간과 사물은 직접 경험한 주관적인 속도이며 순간을 재현한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지는 공간은 시간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실사 이미지로 등장하는 사물은 관객들과 영상 속의 공간 과의 거리를 좁혀준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표현을 위해 파워포인트(Powerpoint)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문서 작업에 주로 사용되는 파워포인트에는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글자에 움직임을 주는 애니메이션 기능을 갖고 있는데, 본인의 작업은 이 기능을 이용해 글자 대신 선이나 사진을 넣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는 플래시에 비해 기능이 단순하고 쉽지만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객체들이 겹치게 될 경우에는 일일이 흰 면을 덮어 줘야 하고, 시간의 수치는 ‘매우 빠르게’ ‘빠르게’ ‘중간’ ‘느리게’ ‘매우 느리게’ 라는 다섯 가지의 속도로만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속도의 지칭방법이 실제로 우리가 심리적 시간을 묘사하는데 사용하는 문장과 흡사하기 때문에 이 애매한 속도의 묘사는 오히려 경험한 그대로의 시간 속도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게 한다.

주관적인 경험을 재구성하여 작업한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작업은 관객들에게 현실의 순간을 기억해 보고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경험하게 한다.